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하셨습니다.
故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모습...
<2000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에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식>
출처 :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http://www.kdjlibrary.org/ )
출처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 )
#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를 애도합니다.
거듭되는 고난을 강한 의지로 버텨내며, '인동초'라는 별칭을 얻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대통령.
4번의 대선 도전 끝에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 50인' 중 1위에 선정되고,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역사적인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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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기사발췌(출처 : daum.net) :
지난달 13일 폐렴증상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85세, 후광(後廣))이 18일 오후 1시 43분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렴으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 병원은 “폐렴으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때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한때 심장이 정지되기도 했다. 이후 의료진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다시 심장이 뛰기도 했지만 결국 서거했다”고 밝혔다.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남 목포에서도 뱃길로 3시간 가량 떨어진 섬마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1925년 가난한 농부인 부친 김운식씨의 4남 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목포상업학교에 진학, 44년 봄 목포상업고(5년제)를 졸업한 목포일보를 차려 언론인의 길을 걸었으며, 19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패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현 자유선진당 총재)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 역경은 신민당을 시작으로 50년 한국전쟁당시 공산당에게 붙잡혀 사형직전 탈출을 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1954년 3대 국회의원선거에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정치권에 진출했으나 4, 5대에는 낙선했으며, 1961년 5월 5대 민의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가까스로 당선됐으나 사흘만에 5·16쿠데타가 발생하는 바람에 등원도 못해보고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두 아들을 낳은 첫 부인 차용애 씨와도 사별한다.
이후 1963년 11월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를 목포로 옮겨 당선된다. 이어 1971년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로 한쪽 발을 절게 됐고,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1973년 8월에는 동경 그랜드팔레스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돼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를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는 등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80년에는 5월 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재판당시 “나는 이제 죽지만 이 땅에서 정치보복의 희생자는 나로서 끝나기를 바란다”고 최후 진술을 해 모든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으며,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85년 2월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민추협 공동의장에 취임, 직선제 개헌투쟁에 나서 1987년 6월 항쟁을 촉발시켰고 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라서 평민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던 그는 대선 패배, 1988년 4월 26일 총선에서 세 번째 대권도전에 나섰으나 또 한 번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 직후 정계은퇴 선언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던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7월 귀국, 아·태평화재단을 설립, 95년 9월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 김종필, 박태준씨와 연합을 이루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후 IMF체제를 극복하고 2000년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2003년 퇴임한 故 김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강연회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고, 최근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쓴 소리로 이목을 받기도 했으나 85세를 일기로 영면, 나라에 큰 별이 떨어졌다.
한편, 故 김 전 대통령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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